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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그네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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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에게서 전화가 왔다. 꼭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야 할 말이 많은 것일까? 함께 할 땐 밤의 고요함을 지니다 멀어지기만 하면 온갖 소리를 동원하는 그를, 나는 한때 구원 하겠노라고 다짐했던 때가 있다. 하지만 그는 이제 내 안에 없다. 단지 저 전화 속의 음성으로 존재할 뿐. 왜냐면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을테니까.
 굳은 다짐을 하고서 전원을 꺼두고 학교로 향했다. 하지만 당연 집중이 될 일은 없었다. 그의 전화 한 통에 나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낭비했는지. 머릿속이 창백하다 못해 흰 물감으로 엎질러졌다. 앞에서 뭐라 설명하든지 간에 온통 그의 생각뿐이었다. 왜 전화를 했을까? 하지만 막상 받는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? 그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애원하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.
 그는 지난 여름, 나의 마음을 천으로 덮은 장본인이자 손톱을 물어 뜯게 만든 자다. 나는 지독한 천에 감겨 다른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었다. 오로지 그와 나 단둘이 전부 인 듯 살았다. 그의 마음속에도 똑같은 천이 있다고 믿었다. 물론 아니었고 우린 그렇게 멀어졌다. 점점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화내는 일은 늘어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많아졌다. 물론 그것 또한 나 혼자만의 눈물이었다.
 그를 생각만 해도 내 머리는 편지를 쓴다. 아직 그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많은데. 사실 편지를 쓰기도 전에 울어버려 세 줄 이상을 쓸 자신이 없다. 이는 내 마음에 홍수가 난 것일까 아니면 그가 나의 댐을 부순 것이기 때문일까.
 나는 아직 어질러진 방을 보여 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. 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을까? 얼른 집으로 가 전화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만이 커져갔다.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한동안 잠을 잘 수 없겠지.
 나의 울음을 달래 줄 베개를 품에 안고서 언젠가 또다시 찾아올 그의 전화를 기다리며 천장에 무수히 많은 별자리를 그리고 나서야 나는 눈을 잠깐 붙일 수 있을 것이다.
 나는 남은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. 그저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져두고 나온 나 자신을 원망하며 빨리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게 내 죗값을 치르는 일이라 생각했다. 그에게서 전화를 받기 전 까지는 그 전화를 받지 않는 게 내 죄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.
 집으로 돌아온 내가 한 일이라곤 어서 전화를 키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 하나뿐인데 나는 왜인지 긴장이 되어 괜히 손이 떨렸다. 갑작스레 찾아온 그를 나는 과연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? 그 문제의 답은 결국 전화를 걸어야만 구할 수 있는 답이겠지. 한 통의 부재중 전화를 내 쪽에서 다시 걸었다. 몇 번의 통화음이 흐른 후에 그는 전화를 받았다. 정확히는 그가 아닌 타인이었다.
 그는 그의 친한 형으로 나와 몇 번 마주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단번에 기억하진 못했다. 그의 소개 이후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나의 사랑 그는, 죽었다고 했다. 교통사고였는지 심장마비였는지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. 그는 나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며 전화를 했다고 했다. 는 그저 의 죽음에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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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앙은 스스로가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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